무위이무불위無爲而無不爲
대답과 질문을 놓고 봤을 때,
대답이 아니라 질문이 덕의 활동에 가깝습니다.
대답은 이미 있던 이론과 지식을 먹었다가
누가 요구할 때 그대로 다시 뱉어내는 기능적 활동이지만,
질문은 자신이 자신으로 존재할 때 나오는 힘,
즉 궁금증과 호기심이 밖으로 튀어나오는 일이죠.
자신에게만 있으면서 자신을 활동하게 하는 힘이니까 덕에 가까운 것입니다.
이 세상에 나온 모든 새로운 것들,
모든 위대한 것들은 거의 다 질문의 결과로 나왔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어요.
대답의 결과로 나온 것은 거의 없습니다.
인간은 '없는 것', '안 보이는 것'을 다룰 줄 알아야 해요.
'새로움'이나 '창의'나 '창조' 모두,
'아직 없는 것'이나 '안 보이는 것'이 현실화된 것이죠.
보이고 만져지고 확실히 있는 것만 다룬다면
새로운 이론을 생산해내기 어렵고
새로운 것을 지향하는 태도를 가질 수가 없어요.
그렇게 되면 궁금증과 호기심도 사라져요.
예술도 사라지고요.
질문, 궁금증, 호기심, 지식의 생산, 창의성, 상상력, 이런 것들은
전부 다 안 보이고 없는 세계를 꿈꾸는 것들입니다.
노자는 자연에서 발견한 자연의 운행 원칙을 인간 세상에 적용하자고 해요.
그런데 이 말을 잘못 이해하면
그냥 문명을 거부하고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의미로 오해하게 됩니다.
그건 노자의 생각이 아닙니다.
노자는 자연 속에서 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지적으로 파악한 자연의 운행 원칙을 인간의 삶 속에서 구현하자고 주장하는 거예요.
이 부분에 대한 이해가 정확하지 않으니까 노자 사상을 반문명론으로 오해하고,
문명 자체를 부정하는 삶을 매우 큰 깨달음에 이른 것으로 착각하죠.
노자는 자연을 추구하고 문명을 배격한다는 식의 말은 노자를 잘못 이해한 결과입니다.
노자의 눈에 비친 물은 경쟁하지 않습니다.
다투지 않는 물의 특성이 바로 이것이에요.
경쟁하지 않기 때문에 이미 있는 시스템 안에 끼어들기보다는
아무도 가지 않는 전혀 다른 길을 자신의 선택지로 삼습니다.
그러다 보니 다른 사람들이 이미 차지한 곳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는 아직 이상하고 어색하게 보이는 바로 그곳에 처하게 되는 것이죠.
그곳은 누구도 먼저 차지하려고 덤비는 곳이 아닙니다.
그 누구도 차지하려고 덤비지 않는 이상한 곳,
거기에서 혁신의 씨앗이 남몰래 자라는 것입니다.
창조의 기운은 누구나 다 아는 곳이 아니라,
아직은 비밀스럽게 숨어 있는 이상한 곳에서 시작되지요.
그 이상한 곳에 도달하는 힘을 물이 가지고 있습니다.
'무위이무불위無爲而無不爲'라는 문장은 노자의 철학을 정말 제대로 함축하죠.
무위하라, 그러면 무불위, 즉 모든 일이 잘된다고 말하는 것 아닙니까?
노자의 시선은 '무위'보다는 오히려 '무불위'를 향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보통 '무불위'는 보지도 않고,'무위'만 보죠.
그것은 마치 노자를 앞서는 것, 갖는 것, 온전해지는 것보다는
물러서는 것, 주는 것, 구부리는 것을 강조한 사상가로 보려고 고집부리는 것과 같습니다.
노자는 일을 안 하려는 자가 아니라 일을 잘하려는 자였어요.
화살을 앞으로 멀리 날려 보내려면,
활시위를 뒤로 당겨야 하지요.
두 동작은 활을 잘 쏘기 위한 한 벌의 동작입니다.
노자는 활을 아무렇게나 쏘려는 사상가가 아니라 정확하게 잘 쏘려고 했던 사상가였죠.
골프를 칠 때도 공을 끝까지 보고 고개를 들지 않는 것이 제일 중요해요.
고개를 든다는 것은 클럽에 공이 맞기도 전에 내 공이 어디로 갈지 먼저 보려는 거잖아요.
누구나 이런 어리석음을 보이죠.
그러나 공이 날아갈 먼 곳을 미리 보려는 마음을 억누르고
클럽이 공에 맞는 것만 보면 공이 더 정확히 맞고 더 멀리 가거든요.
공에 클럽이 맞기도 전에 공이 갈 곳을 미리 쳐다보려 하면,
공이 제대로 맞을 리가 없습니다.
더구나 공을 저 멀리 쳐야겠다거나 세게 쳐서 저 멀리 보내야겠다고 마음먹는 순간
온몸에 힘이 들어가서 잘 되지 않아요.
운동의 기본은 힘을 빼는 것입니다.
그게 무위無爲예요.
그래서 노자는 무위이무불위無爲而無不爲,
즉 무위를 행하면 되지 않는 일이 없다고 말합니다.
혹은 무위하기만 하면 다 잘된다고도 새길 수 있죠.
- 나 홀로 읽는 도덕경, 최진석 지음, 시공사,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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