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무에게 인생을 배웠다
내 한 몸 건사하기도 벅찼던 젊은 시절 한 아이의 아빠가 되었을 때,
나는 당최 아이를 어떻게 대할지 몰라 허둥대다가
손을 많이 댈수록 오히려 자라지 못하는 어린 묘목을 떠올렸다.
나무를 키울 때 지나친 관심이 오히려 성장을 방해한다는 걸 떠올리고는
아이도 나무 기르듯 하자고 마음먹었다.
그러고는 마치 어린 묘목을 돌보듯 간섭하고 싶은 마음을 거두고
한 걸음 뒤에서 아이를 지켜보았다.
덕분에 딸아이는 일찍부터 제 인생을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지는 법을 깨우쳤다.
살면서 부딪치는 힘든 문제 앞에서도
나는 부지불식간에 나무에게서 답을 찾았다.
척박한 산꼭대기 바위틈에서 자라면서도
매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나무의 한결같음에서
감히 힘들다는 투정을 부릴 수 없었다.
평생 한자리에서 살아야 하는 기막힌 숙명을
의연하게 받아들이는 나무를 보면서는
포기하지 않는 힘을 얻었다.
살다 보면 때로 어떻게든 버티는 것만이 정답인 순간이 온다는 것도
나무가 아니었으면 몰랐을 것이다.
인생의 후반기에 접어든 지금은
노목에게서 나이 듦의 자세를 새삼 깨우치고 있다.
나이를 먹을수록 제 속을 비우고 작은 생명들을 품는 나무를 보며
가진 것을 스스럼없이 나누는 삶,
비움으로서 채우는 생의 묘미를 깨닫곤 한다.
평생을 나무를 위해 살겠다고 마음 먹고 병든 나무를 고쳐 왔지만,
실은 나무에게서 매순간 위로를 받고 살아갈 힘을 얻은 것이다.
그래서 지금 나는 생각한다.
남은 날들을 꼭 나무처럼만 살아가자고.
마지막 순간까지 최선을 다해 살다가 미련 없이 흙으로 돌아가는 나무처럼,
주어진 하루하루 후회 없이 즐겁고 행복하게 살다가
편안하게 눈 감을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다.
천수천형千樹千形.
천 가지 나무에 천 가지 모양이 있다는 뜻이다.
한 그루의 나무가 가진 유일무이한 모양새는
매 순간을 생의 마지막처럼 최선을 다한 노력의 결과다.
수억 년 전부터 지금까지 나무의 선택은 늘 '오늘'이었다.
이제는 알 것 같다.
인생에서 정말 좋은 일들은 쉽게 찾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값지고 귀한 것을 얻으려면 그만큼의 담금질이 필요하다는 것을 말이다.
그래서 나는 사는 게 너무 힘들다고,
이제는 포기하고 싶다는 사람들에게 말해 주고 싶다.
우리가 원하는 행복이나 성공 같은 좋은 일들이 우연히 갑작스럽게 찾아온다면
노력이나 인내 따위는 필요하지 않을 거라고.
그러니 힘이 들어도 어떻게든 버티고 있는 스스로를 응원하면서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라고.
생존을 위한 버팀은
한번 싹을 틔운 곳에서 평생을 살아야 하는 나무들의 공통된 숙명이다.
비바람이 몰아쳐도 피할 길이 없고,
사람을 비롯한 다른 생명체의 위협도 고스란히 감내해야 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버틴다고 하면 굴욕적으로 모든 걸 감내하는 모습을 떠올린다.
하지만 평생 나무를 지켜본 내 생각은 다르다.
나무에게 있어 버틴다는 것은 주어진 삶을 적극적으로 살아 내는 것이고,
어떤 시련에도 결코 자신의 삶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버팀의 시간 끝에 나무는 온갖 생명을 품는 보금자리로 거듭난다.
나이 든 자에게 필요한 것은 세월이 만들어 낸 빈 공간에
작은 들짐승과 곤충들을 품어 내는 주목나무의 자세가 아닐까.
주목나무가 비어 있지 않았다면
한겨울 매서운 비바람에 작은 들짐승과 곤충들은 추위에 떨어야 했을 것이다.
그러니 물러나야 할 때 억지를 부리기보다
움켜쥐고 있는 것들을 잘 내려놓고,
그 빈자리를 드러내야 한다.
보다 나은 내일을 꿈꾸며 끈기 있게 기다리는 자세는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기다림 그 자체만으로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작은 씨앗이 캄캄한 흙을 뚫고 세상 밖으로 머리를 내밀듯,
우선 내가 있는 자리에서 한 걸음 나아가려는 용기가 필요하지 않을까.
괴테도 말하지 않았던가.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용기 속에
당신의 천재성과 능력과 기적이 모두 숨어 있다"고.
맞서 싸우지 않고
일단 한 걸음 물러서서 부드럽게 우회할 줄 아는 것.
그것은 결코 지는 것이 아니다.
저 혼자 강하게 곧추선 나무가
한여름 폭풍우에 가장 먼저 쓰러지는 법이다.
누군가는 그랬다.
좋은 일은 믿음을 가진 사람들에게 찾아오고,
더 좋은 일들은 인내심을 가진 사람들에게 찾아오지만,
최고의 일은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찾아온다고.
그것이 바로 내가 지금도 아픈 나무들을 포기하지 않는 이유,
그리고 내게 주어진 오늘 하루에 최선을 다하는 이유다.
대나무는 풀도 아니고 나무도 아니지만
자신의 방식대로 잘 살아가고 있다.
그러니 지금 설령 사람들이 정해 놓은 틀 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있더라도
불안해하거나 스스로를 못났다고 자책할 필요가 없다.
어쩌면 대나무는 기죽어 있는 사람들에게 그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왜 남이 정해 놓은 틀 안에 들어가지 못해 안달입니까?"
인간은 작은 유혹에도 마음이 흔들리고
시련 앞에 맥없이 무너지는 약한 존재다.
그러니 흔들리지 않으려 너무 애쓰기보다는
오히려 흔들리며 사는 법을 배우는 것이 현명할지 모른다.
힘을 빼고 세월의 흐름에 온몸을 맡겨 보는 것.
바닷가 포구에서 거친 바람을 맞으며 살아가는 팽나무처럼 말이다.
- 나는 나무에게 인생을 배웠다, 우종영 지음, 한성수 엮음, 메이븐,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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