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득록
일득록
산보다 더 높은 게 없고,
바다보다 더 넓은 게 없지만,
높은 것은 끝내 포용하는 게 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바다는 산을 포용할 수 있어도,
산은 바다를 포용하지 못하는 것이다.
사람의 가슴속은 진실로 드넓어야지,
한결같이 높은 것만 추구해서는 안 된다.
내가 깊이 경계하는 것은 '쾌快' 한 글자에 있나니,
매사에 만약 쾌락을 쫓으려 한다면
후회하는 일이 많아질 것이다.
나를 비방하는 사람은 타산지석이 되므로 해로울 게 없다.
내가 사람을 대할 때 성심으로 대한다면
그 사람도 나를 성심으로 대할 것이다.
나의 정성은 다하지 못하면서
남이 나를 성심으로 대하지 않는다고 질책한다면,
이는 '서恕' 자 공부가 전혀 없는 것이다.
내가 평생토록 추구한 것은 이 한 글자에 있다.
무릇 세상일은 모두 적절한 때가 있다.
때가 오면 저절로 이루어지나니,
인력으로 재촉하려 해서는 안 된다.
재촉하면 도리어 해가 되기도 한다.
일은 크건 작건, 신중히 해야지 함부로 해서는 안 된다.
작은 일을 함부로 하게 되면, 큰 일도 함부로 하게 된다.
큰 일을 함부로 하지 않는 것은,
작은 일을 함부로 하지 않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일을 할 때는,
시간이 부족할까 염려하지 말고,
오직 마음이 미치지 못할까 염려하라.
사私 가운데 공公이 있으며, 공 가운데 사가 있다.
사 가운데의 공은 외면은 비록 굽어 있어도
내면은 충실하여 용서할 만하며,
공 가운데의 사는 겉모양은 비록 곧아 보이나
마음은 비뚤어져 있다.
인仁과 지智가 있더라도 용勇이 없다면,
결국 그 인과 지를 제대로 발휘할 수 없다.
근력은 쓸수록 더욱 단단해지고,
총명은 기를수록 더욱 새로워진다.
성인은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
단지 욕심이 적은 사람이며,
이치에 합당한 일을 할 뿐이다.
처사는 모두 심장이 뜨겁고,
영웅은 본래 안목이 냉철하다.
- 일득록, 정조대왕 어록, 남현희 편역, 문자향, 2008
서평
평범한 군주가 되기를 거부한 조선의 호학 군주, 정조를 어록으로 만나다.
『일득록(日得錄)』은 조선의 제22대 왕인 정조(正祖, 1752~1800)의 언행을 기록한 책이다.
정조의 ‘싱크탱크’였다고도 할 수 있는 규장각 신하들이 일상에서 보고 들은 정조의 언행을 기록한 이 책에는 한 인간으로서, 학자로서, 정치가로서 정조의 면모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리고 그 한마디 한마디는 200년이라는 시간을 초월하여
여전히 같은 공간에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큰 의미로 다가온다.
본 역서에서는 『일득록』 가운데, 난해하여 전문 지식이 있어야 이해할 수 있는 것,
오늘의 현실에 맞지 않는 것, 내용이 중복되거나 유사한 것 등은 제외하고,
‘성심(省心), 처기(處己), 학문(學問), 독서(讀書), 처사(處事), 사절(士節), 시폐(時弊),
절용(節用), 애민(愛民), 정사(政事), 형정(刑政), 훈어(訓語)’의 12항목으로 재편하였다.
이 12가지 소제목은 정조가 평생 통해 추구했던 삶의 지향점이기도 했다.
그리고 각 단락마다 원문과 함께, 내용 이해를 돕기 위한 역자의 평설을 달아 놓았다.
이 책에 실린 정조의 언행은 역사, 정치, 사회, 학문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한 개인의 삶에 이르기까지, 200여 년이 지난 지금 이 시대에도 여전히 중요한 가르침을 전하고 있다.
따라서 독자들은 이 책을 읽음으로써, 자신의 내면 세계를 성찰하여 더욱 풍요로운 삶의 토대를 마련할 수도 있을 것이며, 더 나아가 우리 시대를 반성하고 비판할 수 있는 안목을 기르는 데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위 서평은 알라딘에서 제공한 정보입니다.